2014 과정과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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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18 – 2014.9.28

: 과정과 흔적 (Process & Trace) “우리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과정에 있다”

: 골드스미스 졸업생 7명으로 구성된 그룹 SE14 :
김민선 | 김민지 | 백수혜 | 정병주 | 정지원 | 최은영 | 톰 라킨

: 2014년 9월 18일 ~ 2014년 9월 28일 오후 6 -9시

: 전시정보/전시서문:

화이트헤드(A.N.Whitehead)는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에서 과정은 곧 실재이고 실재는 곧 과정임을 천명했다. 그의 철학은 과정과 실재는 끊임없는 변화와 교체 속에 있는 현실의 존재들을 탐구하는 ‘유기체’의 철학이다. 존재는 자족적으로 고립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와 연관을 맺으며 ‘관계’로서 존재한다. 다수의 사물로 구성된 우주는 그 다자(many)간의 변화와 유동성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는 계속해서 유보(delay)된다. 완성되거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단정을 유보한다. 하지만 현실적 존재들이 합쳐지면서 그 개체적 통일성을 획득해 나가는 그 순간의 입각점이 없이는 현실 세계를 개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 통일의 순간인 이행(transition)의 과정을 통해 창조성을 생성할 수 있다. 창조성이란 무에서 유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 유를 더 하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것 이다.

정과 흔적 <Process and Trace> 전에 참가한 7명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실재와 변화를 동시에 강조하고, 비결정성과 불명확함이 의미를 드러내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들이 추구하고 탐구하는 ‘과정’의 양상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김민선 |
김민선은 주름이란 지표를 회화적 표현과 물리적 차원의 재현이라는 각기 다른 두 개의 현실적 존재로 제시함으로써 이 두 존재가 함께 개체적 통일성을 획득하는 과정 속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의 세계와 물리적 대상의 계속적인 의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병주 | 정병주는 자신의 신체와 사물이 임의적으로 맺는 관계를 드러내는데, 이 과정은 비단 물질과 신체의 관계 변화, 물리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관계 속에서 고정되고 결정적으로 여겨지던 구별과 제도를 와해시키는데 목적을 둔다.

김민지 | 김민지는 공간의 명확함이라는 완결성의 허구를 폭로한다. 명확한 것으로 이해되는 공간은 그가 공간을 조작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와해된다. 그는 청각적 경험을 토대로 공간이라는 것도 계속되는 과정 속에서 존재를 변화 해 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백수혜 | 백수혜는 완성될 수 없는 자아를 완성하고자 한다. 자아 확립의 완결이란 불가능하다. 그 완결을 향한 과정의 추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의 추구를 관람객과의 또 다른 관계 속으로 확장시킨다. 인간은 지속되는 시간, 즉 과정 속에서 ‘관계’맺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자아를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의 일환이다.

 

이들의 ‘과정’에의 탐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조력자는 ‘흔적’이다. 흔적은 과정을 파악하는 과정의 세부 구조로서 의미를 가진다. 흔적은 과거에 현존했음을 정립한다. 흔적을 지우는 행위 자체에도 흔적은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흔적은 존재의 말소불능을 보여준다.

 

최은영 | 최은영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의 시간성을 내포한 흔적들을 수거한다. 그 대상들은 빈 의미를 가진 상태이지만 재배치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이 과정은 하나의 관계에서 다른 관계로의 전환의 과정을 보여준다.

정지원 | 정지원은 순간이라는 흔적을 수집한다. 이 순간들은 고정되며 반복되는 이미지로 변화하여 영속적인 운동 속에서 끝없이 유예되며 순간의 영원한 지속을 완성한다. 그는 영원 속에서 순간의 참 의미를 탐구한다.

톰 라킨 | 톰 라킨은 자신이 탐험한 흔적들을 구조화한다. 이 구조화의 작업을 통해 흔적들은 본연의 의미에서 자유로워지며 매번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고정되며 불변한 것은 없고 늘 새로운 실체와 시점들을 갖게 된다.

 

이들의 작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완결성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로지 완결성 그 개념 자체뿐이라는 점이다. 과정은 변화를 의미하고 이 변화는 완결되거나 확정되지 않는다. 세계는 미결정적 이다. 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내부나 외부도 아니고 화술도 기술도 아니다. 이 세계 속 이들의 미술 역시 임의성과 우연성에 의해 계속되는 변화의 상태이며, 그 방향도 명확하지 않은 과정의 전 영역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두 번째는 그 과정의 과정을 탐구함으로써 현실을 또 한 번 개괄하는데 있다.

마지막으로 이 전시의 부제인 ‘우리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과정에 있다’는 단순히 이들의 작업만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상업이나 경제와 같은 것들의 수혜자 취급을 당하는 가치 혼란의 시대에서 젊은 예술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고민도 내포하고 있다. 사실 상업이나 경제 따위는 문화의 하나의 파생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문화의 창시자라고 믿는다. 지금은 수혜자가 시혜자를 식민화하려는 시기다. <과정과 흔적> 전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은 그 혼란의 과정 속에서 예술과 삶 그리고 그 경계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이끌어가고 있다. <글쓴이: 독립 큐레이터>